Re: 메아 쿨파, 누군가 당신의 잘못을 글로 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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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이 있는 해안선. 라이선스: CC-0
브레넌 케네스 브라운은 자신의 글 중 하나에 대한 내 답글이 하루의 대부분 동안 Bubbles 목록 최상단에 올랐던 경험에 대해 썼다. 그에 대해 나는 사과해야 하며, 조금이나마 맥락을 짚고 싶다. 브레넌은 글 서두에서 이렇게 썼다:
글은 비판적이었지만, 공정했고 선의로 쓰여졌다. 그렇다고 해도, 어제 Bubbles.town 최상단에서 나에 대한 3,500단어짜리 글을 보는 건 분명 불안을 안겼다. 하지만 그건 감수해야 할 일이다. 내가 뿌린 씨앗이 돌아온 셈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작업을 세상에 내놓으려면 세상의 반응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사실을 바로잡자면, 나는 애초에 브레넌의 글에 답하는 3,600단어짜리 비판을 쓸 생각으로 시작한 게 아니다. 특히 지금처럼 신랄한 비판을 할 생각은 더더욱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다른 사람의 생각 중 내 생각과 비슷한 지점이 있거나, 다소 빗겨 있더라도 공통점을 찾으려는 글을 이어 쓰는 걸 좋아한다. 고든 매클레인과 마이클 린치에 대한 내 답글들도 대부분 그런 식이었다.
이번 경우에는 내 생각을 풀어놓기 전에 몇 가지를 바로잡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정정을 다 쓰고 나니, 나는 더 이상 내 생각을 나누고 있는 게 아니었다. 대신 다시 비평가의 역할로 돌아가 학문적 엄밀함을 적용하려 애쓰고 있었다(학계를 떠난 지 4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는 아직 브레넌 글의 핵심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이 글은 정보가 너무 빼곡해서 명확하게 검토하려면 하나하나 뜯어보는 데 상당한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실패했다. 비판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균형감을 유지하지 못했다. 변명이라면 하나뿐이다. 너무 비판적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좌절한 나머지, 그 좌절감을 때로는 작품 자체에 집중하는 대신 저자에게 돌려버렸다는 것이다. 그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
이어서 브레넌은 내 글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 몸은 그 차이를 알지 못한다. 나는 평생 도덕적 강박, 즉 도덕적 강박 사고로 고통받아 온 사람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선을 행하라는 높고(아쩌면 불가능한) 기준을 세우고,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실패하고 있다고 느낀다. 비합리적으로—정신질환 때문에—나는 내가 쓴 별로인 글 하나를 끔찍한 도덕적 실패로 본다. 실제로 사람들이 밀크셰이크 덕을 당하게 만드는 일들과 같은 수준의 실패로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 지점을 짚고 싶다. 우리가 이를 경험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여기에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르는 분들을 위해 말하자면, 나는 다른 웹사이트를 하나 운영했는데 지금은 10년째 휴면 상태다. 하지만 전성기에는 그곳에 500편이 넘는 글을 썼고, 그중 절반 이상(360~420편)이 음악 리뷰였다. 그리고 비슷한 기간 동안 휴면 상태인 넷레이블도 하나 운영했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브레넌이 겪는 어려움과 어느 정도 닮은, 내가 처했던 두 가지 상황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첫 번째는 레이블에서 함께 작업하던 아티스트 중 한 명이 공연을 뒷받침하는 데 사용할 자료들을 나에게 요구하기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 자료들에 대해서는 함께 일을 시작할 때 논의된 적도 없었고, 내가 그런 자료를 제공한다고 문서로 남긴 적도 없었다. 사실, 운영 전체가 빠듯한 예산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나는 내가 댈 수 있는 돈을 어떻게든 보태고 있었다. 레이블에서 나오는 수익 자체가 없어서 내가 이미 제공한 것 이상으로 아티스트들에게 뭔가를 더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이 말을 들은 아티스트는 격분했고, 여기저기 글을 올리며 나의 신뢰도를 깎아내리려 했다.
나를 아는 사람 중 그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가 퍼뜨리던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고 증거 자료를 제시하는 글을 두어 차례 올렸다. 그 자료들은 그의 공격이 너무나 개인적이어서 법적 다툼으로 번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허겁지겁 모아둔 것이었다. 그때 상황이 더 악화됐다. 그의 공격이 나에 대한 협박으로 변한 것이다. 그렇다, 그런 종류의 협박이었다. 하지만 나를 아는 다른 사람들이 그가 글을 올린 플랫폼들에 그의 공격을 알린 뒤에야 그는 조금 수그러들었다.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그랬다. 그리고 덕분에 우리 둘 다 작업 관계는 산산조각 난 채로 각자의 길을 갈 수 있었다.
다른 한 사례에서는 내가 여러 차례 리뷰를 썼던 아티스트가 어느 순간 나를 적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그는 내게 장문의 항의 글을 보내 수년에 걸쳐 쓴 자신의 작품에 대한 리뷰를 모두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알고 보니, 이는 내가 일부 리뷰에서 몇 가지 실수를 한 데다 그가 내 리뷰와는 무관한 힘든 개인적 경험을 겪은 것이 겹쳐 시작된 일이었다. 그와 일주일(혹은 그 이상) 동안 오가며 대화한 끝에, 결국 그는 문제가 된 리뷰에 정정 내용을 추가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데 동의했다. 그것은 내가 언제나 기꺼이 하려던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 두 경험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어느 면에서 브레넌의 경험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하던 일에 깊이 몰입해 있었다.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더 큰 선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작업이 어떤 식으로든 해가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리뷰를 쓸 때도 나만의 원칙이 있었다. 한 음반에 대해 최소 세 가지 좋은 점을 말할 수 있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리뷰는 대개 발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두 경험은 모두 마치 전쟁 속에 있는 것처럼, 공격받고 날이 선 채로 며칠, 심지어 몇 주를 보내게 만들었다. 두 경험 모두 내가 생각하던 나의 모습을 심각하게 흔들었고, 모든 것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겪게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누구에게도 안기고 싶지 않은 경험이기도 하다. 그리고 앞으로 더 나아지도록 노력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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