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의 집, 내일의 집
원문은 Unattributed님이 에 게재했습니다. 이 블로그 구독하기
1976년 오늘, 미국은 건국 200주년을 맞았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지은 지 1년도 안 된 집으로 이사했다. 1975년 늦가을에 그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20년이 넘게 그곳을 떠나 있다가 지금 다시 그 집에 살고 있다.
이곳을 내가 “집” 혹은 “그 집”이라고 부른다는 걸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보금자리’라고는 부르지 않는다. 이 건물이 과연 보금자리인지, 애초에 ever 그랬던 적이 있는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는다. 건물로서의 집과 보금자리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아마 대부분에게는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닐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보금자리는 특정 건물에 묶여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보금자리란 그저 존재하거나 견디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온전함을 느끼는 곳이다.
이 나라의 건국 250주년인 오늘, 나는 이제 안다. 200주년이 우리 가족의 끝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묘하게도 그 끝은 이 나라가 처한 상황과 닮아 있다.
아버지에게는 가족에 대한 비전이 있었다. 본인이 매우 강하게 믿고 있던 비전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자라며 겪었다고 느낀 잘못들을 바로잡고 싶어 했다. 가족을 위한 비전이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나머지 가족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시골에서 살며 사회의 상당 부분과 단절한 채 소박한 삶을 산다는 아버지의 낭만적인 그림을 공유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모든 것이 복잡해졌다.
아버지는 소박한 삶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농작물을 키우고 적어도 어느 정도는 자급자족하는 삶이었다. 그 비전 속에는 어머니와 누이, 그리고 내가 그 생활 방식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포함되어 있었다. 현실은 달랐다. 우리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애초에 아버지 머릿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았다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버지가 가정의 가장이고 가족은 가장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시대에 속한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고립되어 지내는 타입이 아니었다. 사람들과 어울릴 때 생기를 찾았다. 나는 그 점이 솔직히 몹시 짜증스럽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어머니는 식료품 가게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짧고 정중하게 인사하고 끝내는 대신, 상대가 자신의 인생사를 털어놓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왠지 어머니라면 자신의 인생 문제를 해결해 줄 지식과 지혜가 있을 거라고 본능적으로 믿는 것 같았다.
누이는 지적인 사람이었다. 상상조차 못 할 속도로 책을 탐독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늘 책을 한 무더기씩 들고 나오곤 했다. 열두 권짜리 한 무더기도 길어야 2주를 넘기지 못했다. 누이는 “땅의 소금” 같은 타입의 사람이 아니었다. 전업주부가 되거나 넓은 텃밭을 일구고 수확하는 허리 부러지는 육체노동을 할 운명은 아니었다. 누이의 포부는 아버지의 비전과는 절대 맞지 않았다.
나는 꿈꾸는 사람이었다. 무언가를 보며 “만약에?”라고 말하곤 하는 사람. 스테레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어떤 책이나 텃밭보다도 큰 위안을 주었다. 나는 스포츠가 주는 사회적 측면에서도, 땅이 주는 풍요로움에서도 아무런 가치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식물을 키우는 재주라고는 도무지 없었다. 나는 혼자 도서관이나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탐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보고, 나만의 자기표현 방식을 찾고 싶었다.
아버지는 도널드 트럼프가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농담하는 줄 알았다. 내가 지미 카터의 당선을 예측했던 것에 대해 되갚으려는 줄 알았다. (공평하게 말하자면, 나는 정치를 이해해서 그런 예측을 한 게 아니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카터에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고 예측했을 뿐이다. 마치 어머니를 따라 하듯.) 그 시점에 아버지가 뭘 알았겠는가? 게다가 치매가 진행되면서 갑자기 닥터 필에 푹 빠져 있었던 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예측에 뭔가 의미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도널드 트럼프의 부상이 이 나라의 깊은 분열을 드러내고 있다는 걸 이해했던 걸까? 아버지는 도널드 트럼프의 부상과 우리가 이 집으로 이사했을 때 드러난 가족 내 분열 사이의 유사점을 봤던 걸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내게 없다. 이 나라의 미래에 대한 답이 없는 것처럼. 내가 아는 단 하나는 이것뿐이다. 이 건물이 내일도 여전히 집일 것처럼, 대통령이 바뀌어도 미국이라는 나라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는 점이다.
글을 무작위로 읽기
댓글
로그인하고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