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다
인생은 짧다. 누구나 아는 말이다. 어릴 때 나는 이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곤 했다. 인생이 정말 짧은 걸까, 아니면 우리가 그저 유한하다는 사실에 불평하는 걸까? 우리가 10배 더 오래 산다면 역시 인생이 짧다고 느낄까?
답할 방법이 없어 보였기에 곧 고민을 접었다. 그러다 아이가 생겼다. 아이 덕분에 그 질문에 답할 실마리를 얻었고, 답은 인생이 실제로 짧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연속적인 양인 시간을 이산적인 양으로 바꾸는 법을 알게 됐다. 두 살배기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주말은 52번뿐이다. 크리스마스가 마법처럼 느껴지는 시기가 예컨대 3살부터 10살까지라면, 아이가 그 마법을 경험하는 모습을 지켜볼 기회는 8번뿐이다. 시간처럼 연속적인 양이 많은지 적은지를 말하기는 불가능하지만, 8이라는 수는 결코 많은 수가 아니다. 땅콩 8알을 손에 쥐고 있거나 고를 수 있는 책이 8권뿐이라면, 수명이 얼마나 되든 그 양은 분명 적게 느껴질 것이다.
좋다, 인생은 실제로 짧다. 그렇다면 그 사실을 아는 게 무슨 차이가 있을까?
나에게는 있었다. “인생은 x 하기엔 너무 짧다”는 형태의 말이 큰 힘을 갖게 됐다는 뜻이다. 인생이 뭐 하기엔 너무 짧다고 말하는 건 단순한 수사법이 아니다. 그냥 ‘짜증 난다’는 말을 돌려 하는 것도 아니다. 인생이 뭔가를 하기엔 너무 짧다고 느껴진다면, 가능하다면 그것을 없애려고 노력해야 한다.
인생이 너무 짧아서 못 하겠다고 느낀 게 뭔지 스스로에게 물으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헛짓거리”다. 이 답이 다소 동어반복적이라는 건 안다. 인생이 너무 짧아서 할 수 없는 것이 곧 헛짓거리의 정의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헛짓거리에는 분명한 특징이 있다. 어딘가 가짜 같은 구석이 있다. 경험으로 치면 정크푸드 같은 것이다. [1]
자신이 시간을 들이는 것 중 무엇이 헛짓거리인지 자문해보면, 아마 이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불필요한 회의, 소모적인 논쟁, 관료주의, 허세 부리기, 남의 실수 뒤치다꺼리, 교통 체증, 중독적이지만 보람 없는 오락 같은 것들이다.
이런 종류의 일이 삶에 스며드는 경로는 두 가지다. 강제로 떠맡게 되거나, 속아서 끌어들이거나. 어느 정도는 환경이 강요하는 헛짓거리를 감수해야 한다. 돈을 벌어야 하고, 돈벌이는 대부분 잡일로 이루어지니까. 사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이를 보장한다. 어떤 일이 더 보람 있을수록 사람들은 더 싸게 그 일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강요되는 헛짓거리가 적을 수도 있다. 늘 관성적인 고단함에서 벗어나, 관습적인 의미의 기회는 적지만 삶이 더 진짜처럼 느껴지는 곳으로 가서 사는 사람들이 있어 왔다. 이런 흐름은 앞으로 더 흔해질지도 모른다.
이사하지 않고도 더 작은 규모로 실천할 수 있다. 헛짓거리에 써야 하는 시간은 직장에 따라 다르다. 대부분의 대기업(그리고 많은 중소기업)에는 헛짓거리가 가득하다. 하지만 돈이나 명성 같은 다른 요소보다 헛짓거리 회피를 의식적으로 우선순위에 둔다면, 시간을 덜 낭비하는 직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프리랜서이거나 작은 회사를 운영한다면 개별 고객 단위에서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다. 까다롭고 소모적인 고객을 끊어내거나 피하면, 수입이 줄어드는 폭보다 삶 속 헛짓거리가 줄어드는 폭이 더 클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헛짓거리는 피할 수 없이 강요되는 반면, 속아서 삶에 스며드는 헛짓거리는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다. 그런데도 스스로 선택한 헛짓거리가 강요된 것보다 없애기 더 어려울 수 있다. 시간을 낭비하도록 유혹하는 것들은 속이는 데 아주 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예가 온라인 논쟁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반박할 때,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을 공격하는 것이다. 때로는 꽤 노골적으로. 공격을 받으면 방어하려는 것이 본능이다. 하지만 많은 본능이 그렇듯, 이 본능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다. 직관에 반하는 것 같지만, 대부분 방어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들이 말 그대로 당신의 인생을 가져가는 셈이 된다. [2]
온라인 논쟁은 우연히 중독성이 생긴 경우에 불과하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들이 있다. 예전에 쓴 적이 있듯이, 기술 발전의 한 부산물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 점점 더 중독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점점 더 의식적으로 중독을 피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한걸음 떨어져 나와 “이게 내가 정말 이렇게 시간을 쓰고 싶은 방식인가?”라고 자문해야 한다.
헛짓거리를 피하는 것과 더불어, 의미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의미 있는 일은 다르고, 대부분은 자신에게 무엇이 의미 있는지 배워가야 한다. 운 좋은 소수는 일찍 깨닫는다. 수학을 사랑한다는 것을, 동물을 돌보는 일을 사랑한다는 것을, 글을 쓰는 일을 사랑한다는 것을. 그리고는 그 일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아낸다. 하지만 대부분은 의미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뒤섞인 채 삶을 시작하고, 점차 둘을 구분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이런 혼란의 상당 부분이 그들이 처한 인위적인 상황에서 비롯된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는 다른 아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하지만 어른들에게 그 시절에 무엇을 잘못했는지 물어보면, 거의 모두가 다른 아이들의 시선을 너무 의식했다고 답한다.
의미 있는 일을 가려내는 한 가지 방법은 미래에도 그것이 신경 쓰일지 자문해보는 것이다. 가짜로 중요해 보이는 일은 대개 중요도가 뾰족하게 솟는 모양을 한다. 그렇게 당신을 속이는 것이다. 곡선 아래 면적은 작지만, 그 모양이 바늘처럼 의식을 찌른다.
의미 있는 일이 꼭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부르는 일일 필요는 없다. 친구와 커피 한잔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나중에 그 시간이 아깝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어린 자녀를 둔 것의 큰 장점 중 하나는 그들이 당신을 의미 있는 일, 즉 자기 자신에게 시간을 쓰게 만든다는 것이다. 당신이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소매를 잡아당기며 “나랑 놀아줄래?”라고 말한다. 그리고 대체로 그게 사실 헛짓거리를 최소화하는 선택이다.
인생이 짧다면, 그 짧음이 우리를 불시에 덮치리라 예상해야 한다. 실제로도 대개 그렇게 된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어느새 사라진다. 그 책은 언제든 쓸 수 있다, 저 산은 언제든 오를 수 있다, 뭐든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기회의 창이 닫혔음을 깨닫는다. 가장 슬픈 창은 다른 사람이 죽을 때 닫힌다. 그들의 인생도 짧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나는 그분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더라면 하고 바랐다. 어머니가 언제나 곁에 있을 것처럼 살았다. 어머니는 특유의 조용한 방식으로 그런 착각을 부추기셨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실수를 한다고 생각한다.
무언가에 불시에 당하지 않는 일반적인 방법은 그것을 의식적으로 자각하는 것이다. 삶이 더 위태롭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지금 보면 다소 병적이라 여겨질 정도로 죽음을 자각하며 살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의 어깨 뒤에 저승사자가 서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하는 것이 정답 같지는 않다. 어쩌면 더 나은 해법은 문제를 반대편에서 바라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장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조급함을 습관으로 만들어라. 그 산에 오르는 것도, 그 책을 쓰는 것도, 어머니를 찾아뵙는 것도 미루지 마라. 왜 미루지 말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상기시킬 필요는 없다. 그냥 미루지 않으면 된다.
무언가를 많이 갖지 못했을 때 하는 일로 두 가지가 더 떠오른다. 더 많이 얻으려 노력하는 것과 가진 것을 음미하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여기서 의미가 있다.
어떻게 사느냐가 얼마나 오래 사느냐에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은 더 잘할 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가진 시간에 더 주의를 기울이면 아마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를 쏜살같이 흘려보내기 쉽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몰입”에는 어두운 사촌이 있어서, 일상의 잡일과 알람 소리 속에서 잠시 멈춰 삶을 음미하지 못하게 한다. 내가 읽은 것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책 속 내용이 아니라 책 제목이었다. 제임스 솔터(James Salter)의 Burning the Days였다.
시간을 어느 정도 늦추는 것은 가능하다. 나도 점점 나아지고 있다. 아이들이 도움이 된다. 어린 자녀가 있으면 너무나 완벽해서 저절로 눈에 들어오는 순간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떤 경험에서 모든 것을 짜냈다고 느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슬픈 이유는 그저 그분이 그립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할 수 있었는데 하지 못한 일들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큰아들이 곧 일곱 살이 된다. 세 살이던 시절의 그가 그립기는 하지만, 적어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우리는 아빠와 세 살 아이가 함께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을 보냈으니까.
헛짓거리를 집요하게 쳐내고, 의미 있는 일을 미루지 말고, 가진 시간을 음미하라. 인생이 짧을 때 해야 할 일은 그것이다.
주석
[1] 처음에는 떠오른 단어가 다른 뜻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곧 그 다른 뜻들이 서로 꽤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라는 의미의 헛짓거리는 지적인 허튼소리와 많이 닮았다.
[2] 이 예는 스스로에게 주는 메모로 일부러 골랐다. 나는 온라인에서 공격을 많이 받는다. 사람들은 나에 대해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나는 “야, 그건 사실이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충동을 억제하는 일을 지금까지 꽤 서툴게 해왔다.
감사의 말 초고를 읽어준 제시카 리빙스턴(Jessica Livingston)과 제프 랄스턴(Geoff Ralston)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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