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하게 글 쓰는 법
에세이란 무엇이어야 할까요? 많은 사람은 설득하는 글이어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 중 상당수는 에세이가 그래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더 야심 찬 목표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세이는 유용한 글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그러려면 글이 정확해야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정확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모호하게 말하면 쉽게 옳은 문장이 됩니다. 예를 들어 학술적인 글에서 흔히 보이는 결함입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 문제가 복잡한 문제이고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으며 지나치게 단순한 관점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식으로 말하면 틀릴 일이 없습니다.
그런 문장들은 물론 틀리지는 않지만, 독자에게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습니다. 유용한 글은 거짓이 되지 않는 한 최대한 강하게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파이크스피크가 콜로라도 어딘가에 있다고만 말하는 것보다 콜로라도의 중간쯤에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유용합니다. 하지만 콜로라도의 정확히 한가운데에 있다고 말한다면 지나치게 나간 것입니다. 실제로는 한가운데보다 조금 동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정밀함과 정확성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과 같습니다. 다른 하나를 무시하면 한쪽은 쉽게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안개처럼 모호한 학술적 글의 반대편에는 대담하지만 거짓인 선동가의 수사가 있습니다. 유용한 글은 대담하면서도 참이어야 합니다.
유용한 글에는 두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을 알려야 하고, 그중 적어도 일부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 내용이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몰랐던 것을 알려 준다고 해서 반드시 놀라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말로 표현해 보지 않은 것을 알려 주는 일입니다. 사실 그런 통찰이 더 근본적인 경향이 있기 때문에 더 가치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요소들을 모두 합쳐 보겠습니다. 유용한 글은 독자가 이미 알고 있지 않은, 참되고 중요한 것을 가능한 한 단호하게 알려 줍니다.
이 모든 요소는 정도의 문제라는 점에 주목하세요. 예를 들어 어떤 아이디어가 모든 사람에게 새로울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얻은 통찰은 아마 세계 70억 명 중 적어도 한 사람은 이미 얻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독자에게 새롭다면 충분합니다.
정확성, 중요성, 강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이 네 가지 요소는 서로 곱해 유용성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숫자와 같습니다. 지나치게 환원적인 비유라 어색하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사실입니다.
어떻게 해야 여러분이 말하는 내용이 참되고 새로우며 중요한지 확신할 수 있을까요? 믿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는 요령이 있습니다. 저는 바보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친구 Robert Morris에게서 이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의 요령은 들을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들기 전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서 의견을 끌어내기는 어렵지만, 일단 듣고 나면 대개 옳습니다.
이를 에세이 쓰기에 적용하면 이렇게 됩니다. 나쁜 문장을 썼다면 발표하지 않습니다. 지우고 다시 씁니다. 흔히 네댓 문단으로 이루어진 가지 전체를 버리기도 합니다. 때로는 에세이 한 편 전체를 버립니다.
떠올리는 모든 아이디어가 좋다고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좋지 않은 아이디어를 발표하지 않기만 하면, 발표하는 아이디어 하나하나가 좋다는 것은 보장할 수 있습니다.
과학에서는 이것을 출판 편향이라고 하며 나쁜 것으로 여깁니다. 탐구 중인 어떤 가설에서 결론을 내릴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면 그 사실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하지만 에세이 쓰기에서는 출판 편향이 올바른 방법입니다.
제 전략은 느슨하게 시작해서 조이는 것입니다. 온갖 아이디어를 시험해 보며 에세이 초고를 빠르게 씁니다. 그런 다음 며칠 동안 아주 꼼꼼하게 다시 씁니다.
에세이를 몇 번 교정했는지 세어 본 적은 없지만, 발표하기 전에 100번 읽은 문장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에세이를 교정하다 보면 대개 거슬리는 부분이 눈에 띕니다. 서투르게 쓰였기 때문일 때도 있고, 사실인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일 때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거슬림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열 번쯤 읽고 나면 그 부분에 이를 때마다 ‘으, 저 부분’이라고 말하게 됩니다. 지나가다가 소매를 걸어 잡아당기는 가시덤불과 같습니다. 대개 그런 부분이 모두 사라져서, 읽는 내내 무언가에 걸리는 느낌 없이 끝까지 읽을 수 있게 되기 전에는 에세이를 발표하지 않습니다.
서투르게 보이는 문장을 다시 표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으면 가끔 그대로 통과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확하지 않아 보이는 문장은 알고도 절대 통과시키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문장이 어딘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진다면 왜 그런지 묻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대개 머릿속에 바로 대체 문장이 떠오릅니다.
이 점에서 에세이 작가는 기자보다 유리합니다. 마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쓸 때까지 필요한 만큼 오래 에세이를 다듬을 수 있습니다. 제대로 쓸 수 없다면 아예 발표하지 않아도 됩니다. 무한한 자원을 가진 적 앞에서는 실수가 용기를 잃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느낌은 그렇습니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자신에게 요구하는 기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이에게 ‘채소를 먹을 때까지 여기서 밤새 앉아 있을 수 있어’라고 말하는 부모와 같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바로 여러분이기도 합니다.
실수가 하나도 빠져나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독자들이 제가 빠뜨린 조건을 지적한 뒤 ‘편향을 감지하는 방법’에 조건 (c)를 추가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실수의 거의 전부를 잡아낼 수 있습니다.
중요성을 얻는 데도 요령이 있습니다. 젊은 창업자들에게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으로 제가 권하는 요령과 비슷합니다. 바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독자를 대리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독자는 여러분과 완전히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중요해 보이는 주제에 대해 쓰면 상당수 독자에게도 중요해 보일 가능성이 큽니다.
중요성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중요한 사람의 수에, 그 사람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곱한 것입니다. 따라서 물론 직사각형은 아니고, 리만 합처럼 울퉁불퉁한 빗 모양에 가깝습니다.
새로움을 얻는 방법은 많이 생각해 본 주제에 대해 쓰는 것입니다. 이 분야에서도 자신을 독자의 대리인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주제에 대해 많이 생각해 온 여러분을 놀라게 하는 것이라면 상당수 독자도 놀라게 할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서도 정확성이나 중요성과 마찬가지로 Morris의 방법을 사용해 그렇게 될 것을 확실히 할 수 있습니다. 에세이를 쓰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면 발표하지 마세요.
새로움을 판단하려면 겸손이 필요합니다. 아이디어의 새로움을 인정한다는 것은 이전에 그 아이디어를 몰랐던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신감과 겸손은 흔히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 경우에는 다른 많은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신감이 겸손해지는 데 도움을 줍니다. 어떤 주제의 전문가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몰랐던 것을 배웠을 때 자유롭게 인정할 수 있습니다. 다른 대부분의 사람도 그것을 몰랐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용한 글의 네 번째 요소인 강도는 두 가지에서 나옵니다. 잘 생각하는 능력과 한정 표현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기술입니다. 이 둘은 수동 변속기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와 클러치처럼 서로 균형을 맞춥니다. 아이디어의 표현을 다듬으면서 그에 맞춰 한정 표현도 조절합니다. 확신하는 내용은 제가 유용한 글의 네 가지 요소를 말했을 때처럼 아무런 한정 없이 단언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의심스러워 보이는 요점은 ‘아마도’ 같은 표현으로 거리를 두고 제시해야 합니다.
아이디어를 다듬을수록 한정 표현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한정 표현을 완전히 없애는 경우는 드뭅니다. 어떤 내용이 곁가지이고 완전히 다듬어 표현하면 너무 길어지는 경우에는 굳이 없애고 싶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한정 표현이 글을 약하게 만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에세이의 문장을 ‘제 생각에는’으로 시작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말하고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논리입니다. ‘제 생각에는 x입니다’가 단순히 ‘x입니다’라고 하는 것보다 약한 표현이라는 점은 사실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제 생각에는’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신의 확신 정도를 표현하려면 그런 말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정 표현은 단순한 수치가 아닙니다. 단지 실험 오차를 나타내는 것도 아닙니다. 한정 표현이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적어도 50가지가 넘습니다. 어떤 내용이 얼마나 넓게 적용되는지, 그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그것이 사실이라는 점을 얼마나 확신하는지, 심지어 어떻게 반증할 수 있는지까지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정 표현의 구조를 탐구해 보려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 유용하게 글 쓰는 일 전체보다 더 복잡할 테니까요. 대신 실용적인 조언 하나만 하겠습니다. 한정 표현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거짓말을 피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일종의 세금이 아니라, 그 자체로 중요한 기술입니다. 그러니 그 표현의 폭을 충분히 익히고 활용하세요. 좋은 아이디어를 갖는 일의 절반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좋은 아이디어를 갖는 데 필요한 일부입니다.
에세이에서 제가 지향하는 다른 특성도 하나 있습니다. 가능한 한 간단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유용성의 구성 요소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독자를 배려하는 문제에 더 가깝습니다. 또한 내용을 정확하게 만드는 실용적인 도움도 됩니다. 간단한 언어로 표현하면 실수가 더 눈에 잘 띄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간단하게 쓰는 주된 이유는 독자를 위해서도, 정확하게 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도 아닙니다. 필요한 것보다 더 많거나 더 어려운 단어를 쓰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너무 긴 프로그램처럼 우아하지 않게 느껴집니다.
화려한 문체가 잘 맞는 사람도 있다는 점은 압니다. 하지만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확신하지 못한다면, 가능한 한 간단하게 쓰라는 조언이 최선입니다.
제가 제시한 공식, 즉 중요성 + 새로움 + 정확성 + 강도가 좋은 에세이를 만드는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사람들을 화나게 만드는 공식이기도 하다는 점은 경고해야겠습니다.
문제의 뿌리는 새로움입니다. 사람들이 몰랐던 것을 알려 준다고 해서 그들이 언제나 고마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모르는 이유가 그것을 알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일 때도 있습니다. 대개 소중히 여기는 믿음과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있다면, 널리 퍼져 있지만 잘못된 믿음은 찾아보기 좋은 장소입니다. 널리 퍼진 잘못된 믿음은 각각 그 주변에 아이디어의 사각지대를 만듭니다. 그 믿음과 모순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탐구되지 않는 아이디어들입니다.
강도라는 요소는 상황을 더 악화시킵니다. 소중히 여기는 전제가 모순된다는 사실보다 사람을 더 화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전제를 단도직입적으로 반박하는 일입니다.
게다가 Morris의 방법을 사용했다면 여러분의 글은 상당히 자신만만해 보일 것입니다. 여러분과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는 어쩌면 불쾌할 정도로 자신만만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만만해 보이는 이유는 실제로 자신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확신하는 내용만 골라 발표함으로써 속임수를 쓴 셈입니다. 여러분에게 반박하려는 사람들은 여러분이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고 느낄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은 끊임없이 자신이 틀렸다고 인정합니다. 다만 발표한 뒤가 아니라 발표하기 전에 인정할 뿐입니다.
글을 가능한 한 간단하게 쓴다면 상황은 더 나빠집니다. 간결함은 명령하는 사람의 말투입니다. 우월하지 않은 위치에서 달갑지 않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을 보면, 충격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말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누군가에게 짧게 말하는 것은 대체로 그 사람에게 무례하게 구는 일입니다.
때로는 실제 의도보다 약하게 문장을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꽤 확신하는 내용 앞에 ‘아마도’를 붙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들이 이렇게 할 때는 대개 눈짓을 보내듯 일부러 그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방법을 너무 많이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에세이 전체에 반어적인 어조를 취하는 것은 진부합니다. 우아함과 간결함이 같은 것을 가리키는 두 이름이라는 사실을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에세이가 정확하도록 충분히 애쓴다면 공격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는 맞습니다. 타당한 공격에는 끄떡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별로 위안이 되지 않습니다.
사실 유용한 글의 강도라는 요소는 여러분을 왜곡에 특히 취약하게 만듭니다. 거짓이 되지 않는 한 최대한 강하게 아이디어를 표현했다면, 누군가가 여러분의 말을 약간 과장하기만 해도 그것은 거짓이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일부러 그러는 것조차 아닙니다. 에세이를 쓰기 시작하면 알게 되는 가장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여러분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이 실제로 쓴 내용에 반대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입니다. 대신 여러분이 했다는 말을 지어내고, 그것에 반대합니다.
별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사람에게 맞서는 방법은 그들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여러분의 문장이나 구절을 구체적으로 인용하고 왜 그런지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별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고 한 이유는 그들이 절대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망가진 논의를 다시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논의는 처음부터 궤도에 올라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상되는 오해를 명시적으로 미리 막아야 할까요? 합리적으로 똑똑하고 선의가 있는 사람이라면 할 법한 오해라면 그래야 합니다. 사실 어떤 아이디어를 한 번에 정확하게 전달하려 하기보다,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게 말한 다음 정정하는 편이 나을 때도 있습니다. 그 편이 더 효율적일 수 있고, 그런 아이디어가 발견되는 과정을 보여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의적인 오해를 에세이 본문에서 명시적으로 미리 막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에세이는 정직한 독자를 만나는 장소입니다. 정직하지 않은 독자를 막겠다고 창문에 쇠창살을 달아 집을 망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1] 고의적인 오해를 막을 장소는 각주입니다. 하지만 그 오해를 전부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말을 했을 때 여러분을 왜곡하는 데 발휘하는 재주는, 하고 싶지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는 일을 합리화할 때 발휘하는 재주만큼이나 뛰어납니다. 아마 같은 능력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에세이를 더 잘 쓰는 방법은 연습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이제 유용한 글의 구조를 살펴보았으니, 이 질문을 더 정확하게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떤 제약을 완화해야 할까요? 답은 중요성의 첫 번째 요소, 즉 여러분이 쓰는 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의 수입니다.
주제를 충분히 좁히면 아마 여러분이 전문가인 분야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것에 대해 쓰세요. 관심을 갖는 독자가 열 명뿐이어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을 돕고 있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나중에 쓰는 주제의 폭을 넓히면 됩니다.
완화할 수 있는 다른 제약은 조금 뜻밖의 것입니다. 바로 발표입니다. 에세이를 쓴다는 것이 꼭 발표한다는 뜻일 필요는 없습니다. 아무 생각이나 전부 발표하는 것이 유행인 지금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제게는 이 방법이 통했습니다. 저는 약 15년 동안 노트에 에세이라고 할 만한 글을 썼습니다. 한 편도 발표하지 않았고 발표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썼습니다. 하지만 웹이 등장했을 때는 이미 충분히 연습한 상태였습니다.
참고로 Steve Wozniak도 같은 일을 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재미로 종이에 컴퓨터를 설계했습니다. 부품을 살 돈이 없어서 실제로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1975년에 Intel이 4K DRAM을 출시했을 때 그는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쓸 에세이가 얼마나 남아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 제가 에세이 쓰기에 관해 배운 것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일 겁니다. 거의 전부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에세이는 오래된 형식이지만, 부지런히 가꾸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인쇄 시대에는 발표에 비용이 많이 들었고, 그렇게 많은 에세이를 발표할 만큼 수요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소설처럼 다른 글을 쓰는 일로 이미 유명하다면 에세이를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면 서평을 쓰면서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세이 작가가 되는 직접적인 길은 사실상 없었습니다. 그래서 쓰이는 에세이의 수가 적었고, 그나마 쓰인 에세이도 다루는 주제가 좁은 범위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인터넷 덕분에 길이 생겼습니다. 누구나 온라인에 에세이를 발표할 수 있습니다. 아마 무명으로 시작하겠지만, 적어도 시작할 수는 있습니다. 누구의 허락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지식의 한 분야가 몇 년 동안 조용히 머물다가 어떤 변화로 인해 폭발하는 일이 있습니다. 암호학은 수론에 그런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인터넷은 에세이에 그런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쓸 것이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발견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에세이를 써야 가장 잘 발견되는 종류의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아직 쓰이지 않은 에세이가 대부분이라면, 그런 아이디어도 대부분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주
[1] 발코니에는 난간을 설치하되, 창문에는 쇠창살을 달지 마세요.
[2] 지금도 가끔 발표할 생각이 없는 에세이를 씁니다. Y Combinator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내기 위해 몇 편을 썼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의 말
이 글의 초고를 읽어 준 Trevor Blackwell, Daniel Gackle, Jessica Livingston, Robert Morris에게 감사드립니다.
글을 무작위로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