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야 하는 이유
내가 어릴 때 읽던 SF 소설에서는 독서가 더 효율적인 지식 습득 방식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체불명의 '테이프'가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불러오듯 사람의 뇌에 지식을 넣어 주는 식이었다.
그런 일이 가까운 시일 안에 일어날 가능성은 작다. 독서를 대체할 무언가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만은 아니다. 설령 그런 것이 존재한다 해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x에 관해 읽으면 x를 알게 될 뿐 아니라 글 쓰는 법도 배우게 된다. [1]
그게 중요할까? 독서를 대체한다면, 글을 잘 써야 할 사람이 있을까?
중요한 이유는 글쓰기가 단지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생각을 갖는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좋은 글쓴이는 생각한 뒤 그것을 기록처럼 옮겨 적기만 하지 않는다. 좋은 글쓴이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거의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이런 종류의 발견을 대신할 방법은 없다.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도 생각을 발전시키는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 뒤에도, 앉아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 여전히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글쓰기로만 할 수 있는 종류의 사고가 있다.
물론 글을 쓰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사고의 종류도 있다. 문제를 너무 깊이 파고들 필요가 없다면, 글을 쓰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다. 두 기계 부품이 어떻게 맞물려야 하는지를 생각한다면, 그것에 관해 글을 써도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 문제가 형식적으로 기술될 수 있다면, 때로는 머릿속으로 풀 수도 있다. 하지만 복잡하고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문제를 풀어야 한다면, 그 문제에 관해 글을 쓰는 일이 거의 언제나 도움이 된다. 따라서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은 그런 문제를 해결할 때 거의 언제나 불리할 수밖에 없다.
글을 잘 쓰지 못하면 잘 생각할 수 없고, 잘 읽지 못하면 잘 쓸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의 '잘'에는 두 가지 뜻이 모두 담겨 있다. 읽기를 잘해야 하고, 좋은 글을 읽어야 한다. [2]
정보만 원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방법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생각을 갖고 싶은 사람에게는 독서를 대신할 여유가 없다.
주
[1] 오디오북도 좋은 글의 사례를 보여 줄 수는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읽어 주는 것을 듣는다고 해서 직접 읽는 것만큼 글쓰기를 많이 배우지는 못한다.
[2] 여기서 '읽기를 잘한다'는 말은 읽기의 기계적 과정에 능숙하다는 뜻이 아니다. 페이지에서 단어를 읽어 내는 능력보다, 단어에서 의미를 끌어내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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