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자로 살아가기
어렸을 때 나는 나이 든 사람들은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도 나이를 먹고 보니,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안다.
나는 끊임없이 초보가 된 기분을 느낀다. 내가 전혀 모르는 새로운 분야에서 일하는 스타트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거나,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의 책을 읽고 있거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낯선 나라를 여행하고 있는 것 같다.
초보가 된 기분은 유쾌하지 않다. 게다가 ‘초보’라는 말은 분명 칭찬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 나는 초보라는 사실에서 고무적인 점을 하나 깨달았다. 한 분야에서 초보일수록, 전체적으로는 초보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본국에 계속 머무르면 모든 일이 다르게 돌아가는 파라와비아로 이주했을 때보다 초보라는 기분을 덜 느낄 것이다. 하지만 이주하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 초보라는 느낌은 실제 무지와 반비례한다.
그런데 초보라는 기분이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면, 우리는 왜 그 기분을 싫어할까? 그런 거부감에는 어떤 진화적 목적이 있었을까?
내 생각에 답은 초보처럼 느끼는 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내가 어리석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보처럼 느끼기 싫은 마음은 뇌가 우리에게 “자, 자, 얼른 알아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 동안에는 그런 생각이 옳았다. 수렵채집인의 삶은 복잡했지만, 지금처럼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갑자기 암호화폐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아내야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니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는 것보다 이미 존재하는 문제를 능숙하게 해결하는 쪽으로 편향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식량이 부족한 세상에서 배고픔을 싫어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던 것처럼, 인간이 초보라는 느낌을 싫어하는 것도 합리적이었다.
이제는 음식이 부족한 것보다 지나치게 많은 것이 더 큰 문제가 되었고, 배고픔을 싫어하는 마음이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끈다. 초보처럼 느끼기 싫어하는 마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초보처럼 느끼는 것은 불쾌하고, 사람들은 때때로 그런 당신을 비웃기도 한다. 그래도 초보처럼 느낄수록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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