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경험은 자나 성공률을 높일까?
원문은 Nadia Asparouhova님이 에 게재했습니다. 이 블로그 구독하기
자나—집중을 통해 도달하는 일련의 변성 의식 상태—는 흔히 “고급 명상 수행”이라 불린다. 이 표현은 자나에 들려면 숙련된 명상가여야 한다는 인상을 준다. 마치 숙련된 아웃도어 전문가만이 북극권 탐험에 나설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명상에 난이도의 스펙트럼이 존재하며, 그 한쪽 끝에는 Calm이나 Headspace 같은 마음챙김 앱이, 다른 한쪽 끝에는 자나가 있다는 생각을 전제한다.
하지만 일화적으로 많은 현대 지도자들은 정반대의 현상을 관찰한다. 경험 많은 명상가도 자나에서 어려움을 겪는 반면, 경험이 없는 명상가는 오히려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는 것이다. 가볍고 놀이하듯 접근하는 태도가 중요해 보인다. 자나에 들어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애써 노력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초보 배낭여행객이 북극권 트레킹에 도전해서는 안 되겠지만, 명상 초심자 중에는 자나에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는 듯하다. 필자 역시 명상 초심자로서 이를 직접 경험했는데, 자나에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도달할 수 있었다.
명상 경험과 자나 성공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필자는 자나를 배운 곳인 Jhourney와 함께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 글에 담긴 견해는 필자 개인의 것이며, 오류가 있다면 전적으로 필자의 책임임을 밝힌다.)
연구 방법
우리는 2023년 9월부터 2024년 4월 사이에 Jhourney 리트리트에 참여한 81명의 익명 참가자 표본을 분석했다. 이들 모두 자나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었다.
‘명상 경험’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 정하는 것 자체가 과제였다. 예를 들어 숙련자와 초보 수영 선수의 차이를 본다면 랩타임이나 들인 노력으로 경험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명상은 대부분 검증하기 어려운 기술이다.
단일 지표로는 명상 경험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모두 자기 보고에 기반한 다음 세 가지 변수를 살펴보기로 했다.
- 추정 누적 명상 시간: 흔히 쓰이는 지표이지만, 많은 사람이 정확한 수치를 기억하지 못해 신뢰도가 그리 높지 않다.
- 리트리트 직전 6개월간의 명상 빈도(주당 시간): 더 유용하지만 여전히 전체상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명상 시간은 질적 차이가 크고, 특히 일상 속 명상과 리트리트 중 명상은 다르다. (예컨대 1년간 주 1시간씩 명상하는 것과 리트리트에서 일주일간 50시간을 몰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 과거 명상 리트리트 참가 여부: 그 자체로는 세분화된 지표가 아니지만, 체계적이고 몰입적인 수행 형식에 익숙한 사람이 자나를 더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데이터가 될 수 있다.
이어서 참가자들이 리트리트 기간 동안 자나를 어떻게 진행해 나갔는지 파악하기 위해 몇 가지 핵심 지표를 선정했다.
- 자나를 경험했는지 여부. 자나는 매우 주관적인 경험이므로, 참가자의 서술이 자나 자기 보고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핵심 지표와 일치하는 경우만을 성공으로 간주했다.
- 자나 단계에서 어디까지 진행했는지, 두 범주로 나누었다: 자나 1~3단계(보다 신체적이고 지복적인 단계) 또는 자나 4단계 이상(보다 정신적이고 평온한 단계).
- 자나에 대한 결정론적 접근을 확보했는지 여부. 즉, 리트리트가 끝날 때까지 원할 때 자나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는지다.
표본에는 몇 가지 유의점이 있다. 여러 리트리트 참가자를 함께 분석했으며, 온라인과 오프라인, 지도자와 프로그램 구성이 각기 달랐다. 인구통계학적 구성도 다양했다. 이러한 변수들을 통제하지 못했고 오차범위도 크므로(±8.09%, 95% 신뢰구간), 분석 결과 해석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초심자와 숙련자 간 자나 성공률 차이는 작다
먼저 세 가지 명상 경험 지표를 기준으로 숙련자와 초심자 간 자나 성공률의 절대적 차이를 살펴보았다. [1]
- 누적 명상 시간의 경우, 숙련자 = 표본 중앙값(300시간) 이상, 초심자 = 중앙값 미만
- “리트리트 참가 경험”의 경우, 숙련자 = 있음, 초심자 = 없음
- 주당 명상 시간의 경우, 숙련자 = 표본 중앙값(주당 2시간) 이상, 초심자 = 중앙값 미만
세 가지 차원 모두에서 숙련자와 초심자 간 성공률에는 사실상 차이가 없었다. 주 2시간 이상 명상한 그룹이 자나를 경험할 가능성이 다소 높긴 했지만, 관찰된 모든 그룹 간 차이는 오차범위 안에 있었다는 점을 강조해 둔다.
초심자 대비 숙련자의 자나 성공률
† = 오차범위 내
성공한 경우, 숙련자는 자나에서 더 멀리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별도로 자나에 도달한 사람들 사이에서 숙련자와 초심자 간 숙련도 차이를 살펴보았다. 얼마나 멀리 진행했는지, 그리고 리트리트 종료 시점에 자나에 결정론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기준으로 했다. 여기서는 그룹 간 차이가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초심자 대비 숙련자의 자나 숙련도 진전 가능성
† = 오차범위 내
표본에서 숙련자는 더 높은 자나 단계까지 진행될 가능성이 높았으며, 그 차이는 리트리트 참가 경험이 있는 그룹에서 가장 크게 나타났다. 또한 자나에 결정론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될 가능성도 다소 높았다. 다만 이 경우에는 리트리트 참가 경험 유무에 따른 차이가 가장 작았다.
위 결과만 보면 초심자도 자나에 도달할 가능성은 동일하지만, 숙련자가 자나 숙련도 측면에서 더 멀리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짓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그 차이는 명상 경험 때문이 아니다
그룹 간 차이를 확인한 뒤, 명상 경험과 자나 숙련도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지 데이터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여기서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우리 표본에서는 명상 경험을 어떻게 측정하든 명상 경험과 자나 숙련도 사이에서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앞서 관찰한 그룹 간 차이를 고려하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평균적으로는 초심자와 숙련자 사이에 차이가 나타나지만, 각 그룹 내부에서는 결과의 편차가 매우 컸다. 이는 초심자든 숙련자든 어떤 사람은 자나에 쉽게 들어가고 어떤 사람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명상 지도자들의 일화적 보고와 일치한다. 그룹 내 변동성이 커서 데이터에서 뚜렷한 패턴이 상쇄된 것이다.
상관계수: 사전 명상 경험과 자나 도달 지표 간 관계

우리의 발견은 그룹 간 관찰된 차이가 명상 경험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다른 요인에 기인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향후 연구를 위한 흥미로운 기회가 된다!
명상 경험이 아니라면, 자나 성공을 예측하는 것은 무엇일까?
요약하자면, 우리 표본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 숙련자와 초심자 간 자나 성공률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자나를 “고급 명상 수행”이라 부르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 그렇게 부르면 오히려 성공하고 혜택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도전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급”이라는 말은 자나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경험보다는, 자나가 가져오는 의식 변화의 정도를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 명상 경험과 자나 숙련도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명상 경험을 더 정확하게 측정할 방법을 찾아야 하거나, 혹은 명상 경험이 자나 진입에 결정적인 다른 기술—예컨대 주의를 지속하는 능력이나 흔히 정신적 몰입이라 불리는 능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대리 지표에 불과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2]
명상 경험이 자나 경험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에 대해 몇 가지 가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 명상 경험을 측정(혹은 정의!)할 좋은 방법이 없다. ‘숙련된’ 명상가란 무엇을 의미할까, 마치 ‘숙련된’ 수영 선수라는 말처럼 명확하지 않다. 명상 시간은 얼마나 오래 연습했는지를 보여줄 뿐, 얼마나 고요한 마음을 잘 만들고 유지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 숙련된 명상가는 자신이 명상이 무엇인지 안다는 자신감이 더 클 수 있다. 그래서 장점(예: 리트리트에서 장시간 앉아본 경험, 깊은 몰입 상태에 대한 친숙함)을 가진 동시에, 어떤 기술을 언제 써야 하는지에 대해 종종 오해하기도 한다. 이러한 잘못된 확신이 뒤섞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 다른 유형의 명상은 자나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길러주지 못할 수 있다. 마음챙김이나 ‘건관(dry insight)’ 위빠사나, 비이원적 수행 등 많은 대중적인 명상법이 가르치는 기술은 자나에 필요한 기술과 메커니즘 자체가 다를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명상 경험이 아니라면 무엇이 자나 성공을 예측할까? 더 많은 사람들과 경험을 나누면서 필자가 현재 세운 가설은, 크게 두 가지 기술이 관여한다는 것이다.
- 몸에서 긍정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능력 (기쁨의 초기 ‘불씨’)
- 주의를 지속하는 능력 (불씨가 타올라 불꽃이 되도록 하는 것)
많은 사람들이 겪는 일반적인 어려움들이 이 두 가지 중 하나로 진단되는 듯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쾌락을 두려워하거나(혹은 ‘방어’하고), 그것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여기거나, 순수하고 복잡하지 않은 기쁨의 원천을 떠올리지 못하거나, 아예 강한 감정 자체에 접속하지 못한다. 이는 모두 긍정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데 문제가 있는 경우다. 그래서 치료나 과거의 사이키델릭 경험이 자나 수행에 도움이 되었다는 보고가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다른 수행자들은 불안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이 없거나, 주의가 산만해지거나 지루함을 느끼거나, 너무 애쓰고 집착한다. 처음에는 분명해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이들은 모두 주의력에 문제가 있는 경우다. 당면한 과제에 내면의 서사가 끼어들지 않고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다. 주의와 감정의 관계는 임상심리학에서 잘 알려져 있으며, 주의력 훈련이 감정 조절을 개선할 수 있다는 증거도 있다.
명상은 주의를 더 잘 통제하는 능력을 기르는 한 가지 방법일 뿐,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그래서 명상가들 사이에서 결과가 뒤섞여 나타나는 것일 수 있다. 우리가 측정하는 것은 누군가 얼마나 오래 명상했는지일 뿐, 그 기저에 있는 기술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이올린을 하루 한 시간씩 연습한다고 해서 반드시 바이올린을 잘 연주하는 것은 아니다.
바이올리니스트의 실력은 얼마나 자주 연습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연주하는지로 평가한다. 마찬가지로 명상이 길러야 할 기술을 식별하고 측정할 수 있다면, 자나에 도달하고 그 단계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흔히 겪는 어려움을 더 명확히 진단하고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자나에도 쓰라린 교훈이 있을까?
2019년 에세이에서 컴퓨터 과학자 리치 서튼은 인공지능 연구의 “쓰라린 교훈”을 지적한다. 지난 70년간 AI의 주요한 진보는 인간 지식을 활용(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더 나은 모델)해서가 아니라, 연산 능력을 활용(대략 2년마다 연산 능력이 두 배가 된다는 무어의 법칙)함으로써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서튼은 일부 AI 연구자들이 인간 마음을 모델링하는 새롭고 복잡한 방법을 개발하는 데 몰두하는 것은, 사실 조잡하고 단순한 ‘무식한 힘(brute force)’이 통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자나에도 쓰라린 교훈이 있지 않을까 궁금해진다. 왜 불안한지, 왜 기쁨을 느끼도록 자신을 허용하지 못하는지, 왜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지를 굳이 파헤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모델링하며 깊이 성찰하는 대신, 예컨대 기쁨의 불씨를 일으키고 주의를 기르는 것을 단순히 ‘무식한 힘’으로 밀어붙이는 편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성공하면 다른 모든 제한적 믿음들은 과정에서 사라지거나, 어쩌면 스스로 해소될지도 모른다. [3]
내 Asterisk 편집자인 제이크 이튼이 자나 경험을 회고하며 쓴 글처럼 말이다.
나는 치료와 자기 탐구, 그리고 온갖 분석적 사고를 통해 나를 괴롭히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데 그토록 많은 시간을 쏟았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나의 성장은 답을 찾거나 프로이트적인 근원을 규명해서 이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저 어떤 은총 덕분인지, 질문 자체를 내려놓는 법을 배웠을 뿐이다.
수행자 인터뷰나 자기 평가와 같은 추가 연구는 이러한 가설들을 더 잘 이해하고 검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자나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고 그 단계를 진행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신뢰성 있게 측정하고 향상시키는 방법에 대한 단서를 드러낼 수도 있을 것이다.
도움을 주신 Stephen Zerfas, Alex Gruver, Matt Lanter에게 감사드린다.
주석
이 글에서 “초심자” 명상가라는 용어는 “숙련자”와 구분하기 위한 편의상의 표현일 뿐이다. 경험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다. ↩
또한 명상 경험을 측정하는 방식—누적 시간, 리트리트 참가 여부, 주당 명상 시간—에 따라 서로 다른 결론이 도출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한 측정 방법이 모든 결과에 걸쳐 일관된 차이를 보여주지는 않았다. 이는 표본의 오차범위가 크기 때문일 수도 있고, 명상 활동 유형에 따라 특정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혹은 우리의 발견이 시사하듯 인과적 메커니즘이 애초에 명상 경험이 아니라 이러한 변수들에 부분적으로만 반영되는 요인에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러한 불일치를 고려할 때, 연구자들이 자나를 연구할 때 사전 명상 경험을 어떻게 측정하고 어떤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지를 신중하게 고려할 것을 제안한다. ↩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으면, 기분이 그렇지 않더라도 결국 미소 짓는 행위 자체가 기분을 끌어올린다는 관찰이 떠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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