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에 대하여
원문은 Matthias Endler님이 에 게재했습니다. 이 블로그 구독하기
이 블로그 디자인을 다듬어 온 지 어느덧 20년이 되었다. 버전을 거듭할 때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조금씩 더 또렷해진다.
돌이켜 보니 내 디자인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단순해졌다. 이제는 사실상 타이포그래피와 여백만 남았다.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무엇을 덜어낼 수 있는지 알게 된 덕분이다.
덜어내는 일이 기쁨을 준다. 어쩌면 지극히 인간적인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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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과 선호
무엇이든 오래 파고들다 보면 강한 호불호가 생긴다. 디테일에 집착하게 된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은 누군가의 집착 대상이다.
스니커즈. 기계식 키보드. 커피.
영화를 많이 보다 보면 더치 앵글을 분석하고 색보정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템포의 미묘한 어긋남이 눈에 들어온다. 다른 작품에서 같은 배우를 알아보기 시작한다. 단역으로 스쳐 지나간 배우라도 말이다.
한번 뉘앙스가 보이기 시작하면 다시는 못 본 척할 수 없다. 그때 비로소 뚜렷한 개인적 선호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이 단계에선 그저 의견이 뚜렷한 사람일 뿐이다.
선호를 갖는 것과 좋은 취향을 갖는 것은 다르다.
좋은 취향을 기르려면 자기 선호 바깥에서도 퀄리티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무언가가 의도적인 선택을 통해 아이디어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그리고 그 선택들이 얼마나 진실한지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좋은 취향은 맥락에 뿌리를 둔다. 대상 뒤에 있는 역사와 장인정신을 이해해야 한다. 그 이해가 없으면 퀄리티는 그대로 스쳐 지나가 버린다.
취향과 전문성
좋은 취향과 전문성은 형제와 같다. 둘 다 깊은 애정에서 나온다. 둘 다 왜 그렇게 작동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매 결정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 알아차려야 한다.
하지만 둘은 같지 않다. 취향은 알아보는 능력이다. 직접 만들지 못하는 분야에서도 취향을 가질 수 있다. 전문성은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취향이 없어도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는 있다.
흥미로운 건 한쪽이 다른 한쪽을 자주 끌고 온다는 점이다. 취향이 있는 사람은 디테일에 대한 애정이 커서 결국 직접 만들기 시작하고, 자신의 일에 애정을 가진 전문가는 부산물처럼 취향을 갖추게 된다.
Trigger
윌리 넬슨의 기타 트리거, 1969년산 마틴 N-20을 보자. 맥락 없이 보면 그저 닳고 닳은 나무토막에 불과하다. 거리 음악가의 기타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1만 번의 공연을 거치며 그것은 윌리 넬슨의 일부가 되었다.
그는 새 기타를 수백 번은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원하는 소리에 대한 취향이 워낙 확고했기에 트리거가 아니면 타협하지 않았다. 1977년부터 지금까지 같은 수리공이 그 기타를 관리해 오고 있다.
윌리는 자신의 사운드에 대한 통제권을 요구한다. 디테일이 사운드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특별한 일을 한 게 아니다. 평범한 것을 너무나 잘했을 뿐이고, 그게 비범함이 되었다.
윌리가 기타를 빚은 걸까, 기타가 윌리의 사운드를 빚은 걸까. 둘은 함께 늙어 왔다. 그리고 함께 생을 마감할 것이다.
그 같은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면 모든 게 힘 하나 안 들인 것처럼 보인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알기 때문이다. 차이를 만드는 디테일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무시한다. 그래서 오히려 일이 더 단순해진다. 요령은 이거다. 좋은 취향은 무엇을 봐야 할지 알려주고, 전문성은 그것을 어떻게 이룰지,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덜어낼지 가르쳐 준다.
Apple
애플 제품을 산다고 해서 취향이 좋다는 뜻은 아니다. 수백만 명이 애플 제품을 가지고 있다. 많은 이에게 그건 그저 지위의 상징일 뿐이다. 애플이 다르게 생각하게 도와준다는 건, 에어 조던이 더 높이 뛰게 도와준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물론 포스터는 정말 좋아한다.)
사실 취향이 좋은 사람들은 종종 브랜드를 피한다. 브랜드가 훌륭한 제품을 망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대개 이렇게 흘러간다:
- 회사가 훌륭한 제품을 만든다.
- 얼리어답터들이 열광한다.
- 인기가 커진다.
- 제품이 대중 시장을 겨냥해 조정된다.
- 퀄리티가 떨어진다.
- 얼리어답터들은 떠난다.
대부분의 제품은 평균적인 고객을 위해 만들어지기에 결국 평균적인 퀄리티에 머무른다. 우리는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없으니 남의 말을 믿고, 그러다 왜 이리 별로인 게 많은지 의아해한다.
우리는 뭔가 별로라는 걸 어렴풋이 감지한다. 뭐가 문제인지 정확히 짚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조금 비극적인 일이다.
브랜드는 퀄리티나 진정성에는 관심이 없다. 관심이 있는 건 돈이다.
알고리즘의 문제
요즘은 독자적인 취향을 기르기가 더 어렵다. 우리는 이미 좋아하는 것만 보여주는 피드와 알고리즘에 둘러싸여 있다. 싫어하는 것에 노출되지 않으면, 진짜 좋아하는 것도 발견할 수 없다.
너무 안주해 버리면 취향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선호는 좁고 얕아진다. 그저 모두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뿐, 왜 좋아하는지는 말하지 못한다.
벗어나는 방법은 무언가에 애정을 갖는 것이다. 무엇이든 좋다! 그것이 자기 자신이 일부가 될 정도로 깊이 애정을 갖는 것이다.
누구나 적어도 하나쯤은 비합리적으로 집착하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속속들이 아는 무언가. 그게 사람을 더 흥미롭게 만들고,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사람은 공유된 집착을 통해 어울린다. 에스프레소 그라인더와 오토바이로 유대감을 쌓는다. 그러다 보면 낯선 사람과도 순식간에 통하게 된다.
남을 위해 무언가를 만들 때 당신의 취향은 눈에 보이게 된다. 당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드러난다.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내 사람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아마 이 블로그 디자인을 다듬는 일을 절대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전문가가 아니라 그냥 의견이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이 블로그는 나만의 선 정원이다. 나에게 기쁨을 준다. 이제 나가서 당신만의 정원을 만들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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