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우리 자신과 연결하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
원문은 Henrik Karlsson님이 에 게재했습니다. 이 블로그 구독하기

글 마지막에는 최근에 읽고 보고 들은 것 중 좋았던 것들을 정리해 두었습니다.
요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말라가로 떠나기 전날, 요한나는 많은 소비가 우리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했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서 뭔가를 확인하려 하면, 원래 하려던 일을 잊어버리고는 30분 뒤에야 막연히 기분만 나빠지는 것들을 멍하니 스크롤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는 것이다. 집에서 인터넷을 켜두는 것만으로도 —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 자기 자신과 동떨어진 느낌이 들고, 마치 머리 뒤편에서 거슬리는 잡음이 들리는 것처럼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했다. 인터넷(그리고 TV 시리즈 같은 비슷한 종류의 소비)은 종종 우리를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채울 수 없는 갈증을 만들어낸다.
반면에 우리를 다시 우리 자신에게로 데려오는 다른 종류의 소비도 있다(소비라는 말이 맞다면). 그림을 보는 것이 그 예다. 저녁에 일하기에는 너무 지쳤을 때 요한나와 나는 종종 화집을 펼쳐 한 페이지를 10분 정도 바라보곤 한다(그 이상 오래 하지는 못한다. 인터넷 글과 달리 그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를 바깥으로 밀어내기 때문이다). 외부의 무언가에 완전히 몰입하도록 내맡겼는데도, 화집을 덮고 나면 오히려 자신에게 더 가깝게 연결된 느낌이 든다.
공항으로 가는 페리 안에서 요한나와 나는 왜 그런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작곡가 필립 글래스의 회고록에 나오는 한 구절이, 왜 예술 — 좋은 예술 — 이 우리를 자기 자신과 더 가깝게 연결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글래스는 이렇게 썼다.
[영화를 위해 음악을 작곡할 때] 나는 영상을 오래 들여다보지 않는다. 한 번 본다. 어쩌면 두 번, 하지만 두 번을 넘기지는 않는다. 그런 다음 기억의 부정확함에 기대어 음악과 영상 사이에 적절한 거리를 만든다. 나는 영상과 음악이 서로 겹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바로 알았다. 그렇게 되면 관객이 스스로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낼 여지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광고나 선전 영화에서 제작자들은 공간을 남겨두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선전의 전략은 공간을 남기지 않는 것, 아무런 질문도 남기지 않는 것이다. 광고는 “이 신발을 사라”거나 “이 카지노에 가라” 같은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영상과 음악을 단단히 묶어두는 선전 도구다.
예술에는 우리가 메워야 할 틈과 거리, 빈 공간이 있기 때문에 — 그림 앞에 앉아 있던 시간이 끝나고 나서 우리가 자기 자신과 더 연결된 느낌을 받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그림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직접 의미를 채워 넣어야 한다. 안쪽으로 귀를 기울여 그림이 불러일으키는 감각을 예술 속에 남겨진 빈틈으로 흘려보내야 한다. 우리 자신에게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거기서 빠져나올 때 우리는 자신과 더 가까워진 느낌을 받는다.
이런 점에서 예술은 일종의 유도 명상으로 볼 수 있다.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과 흥미롭고 깊은 연결을 이룰 때까지 주의를 인도해 주는 외부의 구조물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것이 예술만은 아니다. 우리가 귀 기울이기만 한다면 많은 것들이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로 조율할 수 있다.
말라가에서 보낸 일주일 동안 나는 이 생각을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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