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어마어마하게 크다
원문은 Henrik Karlsson님이 에 게재했습니다. 이 블로그 구독하기

단일 점(빈두)으로부터의 우주의 진화, 1700년경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세 시간 만에 통계상으로는 약 2만 1천 명이 죽었다. 지금 하늘은 낮게 흐려 있고 나는 피로를 느낀다. 수치를 찾아보니 내가 이 문장을 쓰는 바로 지금 약 천만 명이 섹스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하루의 매 순간이 얼마나 광대한지, 우리가 경험하는 것 너머에서 얼마나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제대로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내가 한 번이라도 가본 모든 장소가 (비록 모습은 바뀌었을지언정)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만 생각해도 현기증이 난다. 내가 스물한 살 때 일했던 의료 공장에서는 생산 라인이 지금도 돌아가고 있으며, 내가 마지막으로 그곳을 떠올린 지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거의 쉬지 않고 가동되어 왔다. 내가 머물렀던 모든 집과 아파트에는 지금도 누군가 살고 있다. 만약 내가 돌아가 창문 안을 들여다본다면, 나만큼이나 생생한 그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데이트했던 모든 사람은—부디 그렇기를—여전히 어딘가에서 살아 있으며, 그들 각자에게는 세상 전부처럼 느껴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함께 일했던 모든 사람도, 버스에서 만났던 모든 사람도, 학교를 함께 다녔던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는 솔베이 발레의 On the Calculation of Volume 첫 여섯 권을 읽으며 이 생각을 한다. 아니, 생각한다기보다는 느낀다—그 묵직함을. 올해 내가 경험한 예술 중 가장 마음을 움직인 경험 중 하나였다.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 설명하자면, 발레의 연작 소설은 같은 날—11월 18일—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한다. 매일 아침 파리의 한 호텔 식탁에서 프렌치토스트 한 조각이 떨어진다. 같은 축구팀이 같은 방식으로 경기를 이기고, 팬들은 같은 술집에서 취한다. 클레롱수부아의 한 아파트에서는 한 남자가 아침마다 차를 끓이는데, 언제나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정확히 같은 시각에 끓인다. 그리고 한 소녀는 기차 안에서 이별을 통보받은 뒤 우는데, 그 장면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 구름은 하늘에서 같은 궤적을 되풀이한다.
오직 한 사람, 우리가 읽고 있는 일기의 주인공인 타라 셀터만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린다. 오직 그녀만이 영원회귀에 갇혀 있지 않다. 그녀는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녀는 변화할 자유가 있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차원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현실을 차례로 이어지는 3차원적 순간들의 연속으로 경험한다. 하지만 우리가 시공간을 바깥에서 관찰할 수 있다면, 현실은 시간을 네 번째 차원으로 하는 4차원 객체처럼 보일 것이다. 의자 하나, 돌 하나, 사람 하나하나가 이른바 세계선—시간을 관통해 뻗어 있는 4차원 객체—으로 드러날 것이다. 우리가 조각상 주위를 걸으며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듯이, 우리는 조각상의 세계선을 시간상의 서로 다른 지점에서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아침 햇살 속에서, 아이가 조각상에 올라타려 하는 순간에, 조각가가 그것을 깎아내던 순간에, 그리고 30만 년 전 돌이 기반암 속에 묻혀 있던 때에 이르기까지. 조각상은 (상대성 이론이 말하듯) 언제나 그랬던 4차원 객체로서의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발레의 연작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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