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에 대하여
스티븐 킹은 나에게 조금 부끄러운 즐거움 같은 작가다.
처음에는 더 무거운 책들을 읽는 사이에 머리를 식힐 겸 그의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그의 소설을 열 권 넘게 읽었다.1
그의 책을 한 권 마칠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응, 괜찮았지만 더 잘 쓴 책은 많지.” 그런데도 실망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분명 오락이지만, 맹탕 오락은 아니다.2
특히 몇 년 전 유혹하는 글쓰기(On Writing)를 읽은 뒤로는 그를 더욱 좋아하게 됐다.
이야기는 땅속에 묻힌 화석처럼 발견되는 것이며 작가의 일은 공구 상자 속 도구들을 이용해 그 화석 하나하나를 가능한 한 온전하게 땅에서 꺼내는 것이라는 그의 믿음은 그때부터 나를 매료시켰다. 이는 쓰기는 발견이다라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작가/화자의 역할을 바라보는 겸손하면서도 낭만적인 시선이다. 그들은 잊힌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매개자 역할을 한다.
또 킹이 플롯에 접근하는 방식도 마음에 든다. 미리 결말을 정해두지 않고 하나의 상황에서 출발해 인물들을 탐색하고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따라간다. 그는 인물 하나하나가 되어 생각한다. 선한 인물이든 악한 인물이든 모두 그렇다. 그리고 끝까지 인물들을 따라가며 그 화석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 스스로 발견해 나간다.
그의 인물들이 늘 독자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실적으로 행동하고, 납득할 만한 선택을 하며, 전반적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정성스럽게 빚어져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것이 그의 일부 작품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결말을 갖게 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킹 자신도 작업 중인 책이 어떤 식으로 끝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인물들이 전혀 다르게 행동하기로 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나는 그런 점을 받아들일 수 있고, 어쩌면 존중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말이다.
이런 점들과 그 외 많은 것들, 그리고 페이지마다 배어 나오는 이야기에 대한 분명한 사랑이 그를 우리 주변에 넘쳐나 생각할 틈조차 주지 않는 맹탕 오락과 구분 짓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오락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알게 될 테니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킹의 책은 다음과 같다.
- 유혹하는 글쓰기(On Writing)
- 데드 존(The Dead Zone)
- 11/22/63
조금 독특한 톱3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내게 가장 깊이 울림을 준 작품들이 바로 이 세 권이라,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유혹하는 글쓰기의 전반부는 솔직하고 흡인력 있는 자전적 이야기이며, 내가 이 책을 진짜로 사랑하게 된 이유인 후반부는 킹의 집필 과정과 좋은 작가가 무엇인지, 그리고 거기에 이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안내한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데드 존에서는 주인공이 영웅, 선한 쪽이라고 생각하며 따라가게 된다. 그러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그와 종교적 광신도 사이의 유사성을 깨닫게 된다. 정말 훌륭하고, 거의 십 년 전에 읽었는데도 지금까지도 가끔 떠올린다.
마지막으로 11/22/63은 그 자체로 정말 훌륭한 SF 소설이다. 인류사의 흥미로운 순간(케네디 암살)을 다루면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거나 황당하게 들리지 않으면서도 그 사건을 둘러싼 여러 이론들을 탐구하고, 동시에 매우 흥미로운 시간 여행 개념을 선보인다.
참고로 어제 그의 최신작 홀리(Holly)를 다 읽었는데, 이번에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좋았지만 더 잘 쓴 책은 많았어. 심지어 그의 책 중에서도.” 그런데도 역시 다음에 읽을 스티븐 킹의 책이 벌써 기대된다.
그리고 그는 꽤 멋진 사람처럼 보인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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