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은 누구인가? 그리고 이걸 어떻게 뛰어넘을까?
얼마 전 글래스 어니언: 나이브스 아웃 미스터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영리하긴 한데, 그렇다고 그 정도로 영리하진 않다고. 그러다 문득 나에게 ‘그 정도로 영리하다’는 게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하게 됐다.
몇 년 전부터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전자책으로 두세 챕터씩 읽고 있다. 그 시간대에는 머리가 가장 맑지 않다 보니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을 주로 고르는데, 대부분 Standard Ebooks에서 무료로 구한 책들이다. 1
내가 내려받는 책 중 상당수는 1900년대 초반에 출간된 미스터리·범죄 소설이다. 당연히 그중 많은 작품이 애거사 크리스티의 것이다.
이제 그녀의 작품은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그중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추리 소설 세 편이 있다. 단순히 잘 썼기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어 보이는 종착점이자 ‘범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완벽한 답 세 가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1926)
- 오리엔트 특급 살인(1934)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1939)
아직 읽지 않았다면 꼭 읽어 보길 권한다. 기대를 배반하는 법을 보여 주는 짧고 완벽한 교과서 같은 작품들이다.
이 세 편 이후에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걸 뛰어넘을 수 있을까?
나는 추리 소설 전문가가 아니다.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 이만큼 훌륭한 작품이 또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읽은 범위 안에서는 이 세 편이 결정판처럼 느껴진다.
이 세 소설이 훌륭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에서는 화자가 범인이다. 2
-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는 용의자 전원이 범인이다. 말 그대로 모두.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는 희생자 중 한 명이 범인이다.
기막힌 반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후의 모든 작품이 이 세 가지의 변주처럼 느껴질 정도다.
각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이트 중 하나다! 이곳은 “자원봉사자들이 퍼블릭 도메인 전자책을 정성껏 편집해 오픈소스로, 미국 저작권 제한 없이 무료로 제공하는 프로젝트”다. 책마다 예상 읽기 시간과 난이도도 함께 제공한다. 예를 들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121,970단어(7시간 24분)에 읽기 난이도 60.95(보통 난이도)다. ↩
출간 당시 워낙 논란이 커서 이게 추리 소설에서 ‘페어 플레이’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진지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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